질러라, 잔고가 멸망하리라. 하지만 웃게 되리라.

회사에 다니다 보면 없던 여행 욕구가 미친 듯이 샘솟는데 보통은 홧김에 비행기 표를 지르거나 기차표를 지를 때가 많다. 이것은 일종의 지름기 겸 여행기이다. 옆자리를 비워놓고 쿨한 VIP의 기분을 만끽하며 갑작스럽게 제주도로 떠났다. 어지간한 사람이라면 나보다 더 싸게 살 수 있을 거다. 제주도를 늘 왕복 10만 원 넘게 주고 가는 나란 호구. 하지만 VIP를 위한 특별 서비스가 제공되는 줄은 미처 몰랐네. 옆자리가 전부 비어있는 반면, 앞뒤 모두가 어린아이를 데려온 가족이었다. 어린아이라고 썼지만 정말 애기. 신기하게 한 아기가 우니까 다른 애기도 운다. 그리고 한 애기가 잠시 울지 않는다 싶으니 다른 아기가 운다. 둘 다 울지 않는 선택지는 없다. 왜 우는지는 모르겠다. 내가 늘 오전에 일어날 때 휴대전화 알람 두 개를 켜놓는데 그 알람 같은 느낌. 하나를 끄면 하나가 우는 게 비슷하다. 하지만 내 휴대전화에는 스누즈 기능이 있지만 저 애기들한테는 없잖아? 김포공항에서 제주공항으로 오는 내내 꽤나 고역이었다. 아기가 우는 것 자체는 이해한다. 애기니까. 그런데 이게 아기가 우는데 달래려고 노력하며 어쩔 줄 모르는 부모를 보는 기분과 우는 애기를 옆에 목베개처럼 팽개쳐놓고 폰 게임만 주야장천 하는 부모를 보는 기분은 상당히 다르더라.

하지만 하늘은 옳으니까. 구름은 옳으니까. 비행은 옳으니까. 이너 피스-.

그렇게 제주도에 도착했다. 짧고 굵게 놀다 가련다.

일단 금강산도 식후경. 제주공항에 내리자마자 택시를 타고 이호테우해변으로 향했다. 여기가 공항에서 제일 가까운 해변이라서. 원래 가려던 곳은 어쩐지 전화를 받지 않아 불길한 예감에 한 군데를 더 검색해 뒀었는데 그게 유재덕의 산양산삼 해물라면이었다.

산양산삼 한뿌리가 들어가고 안 들어가고에 따라 가격 차이가 꽤 있는데, 그래도 온 김에 산양산삼이 들어간 걸 먹어보자는 생각에 시켰다. 일단 비주얼은 굿.

오징어 하나가 통으로 들어있다. 면은 예전 꼬꼬면 같은 느낌인데 해물부터 석션하느라 소홀히 했음에도 불지 않아서 만족스러웠다. 국물도 칼칼하고 만족스러운 첫 끼였다.

허기를 채웠으니 사연 있는 사람처럼 해변가를 거닐어본다. 저기 멀리 이호테우해변의 심벌인 빨간 목마, 하얀 목마가 보인다. 이 해변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싶다면 모든 관광지가 그렇듯 목마가 멀리 보일 때 즈음 서서 찍는 게 좋다. 프랑스 파리에서 에펠탑이랑 사진 찍겠다고 기를 쓰고 에펠탑 밑에 가면 정작 사진에 에펠탑을 담을 수 없는 것과 비슷하다. 요정도 거리 아니면 조금 더 멀리에서 찍어야 목마가 사진에 예쁘게 담겨 나온다.

다시 택시를 타고 세화리 카페 공작소로 이동했다. 동선이 왜 이렇게 뜬금없느냐고 묻는다면 이날은 제주도의 명물 장터 벨롱장과 야시장이 열리는 날이라 인근으로 이동해야 했기 때문이다. 벨롱장이 열리는 인근에 있는 예쁜 카페 중 하나가 바로 여기다. 작은 아이디어 하나가 카페를 살린다. 카페 유리창에 그려진 그림인데 하늘과 함께 담아내면 끝내준다. 다른 창문에도 이런 포토 스팟이 있다. 운 좋게 창가 자리에 앉았는데 다들 우리 쪽에 몰려와서 유리창을 찍어대는 통에 연예인이 된 기분을 간접 체험했다. 많은 이들의 인스타그램 사진에 우리의 정수리가 엄청나게 찍혀서 돌아다니고 있겠지. 머리를 감아서 다행이야.

영귤차와 한라봉차와 조각 케이크. 솔직히 눈 감고 맛보라고 하면 구분 못하겠지만 애써 구분하자면 영귤차가 한라봉차보다 조금 더 새콤하다. 케이크도 보드랍고 맛났다. 사실 좀 더 맛없었어도 풍경 때문에 봐줄 수 있을 것 같은데 맛도 무난해서 괜찮았다. 조용한 카페를 지향하고 있어서 소곤소곤 담소를 나눴다.

벨롱장. 이날은 세화오일장에서 야시장과 함께 열렸다. 제주도에서 사는 지인이 추천해줘 구경하러 갔었는데 아기자기한 물건이 많아 구경하는 재미가 있었다. 벨롱장 일정에 맞춰 제주 방문을 하는 사람도 있을 정도라고. 날씨에 따라 장소가 바뀌거나 일정이 취소되니 공식 홈페이지에서 스케줄 체크는 필수다.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사람들이 점점 불어나기 시작했다. 엄청 탐나던 3단 터치 조명. 벨롱장에서는 현금 구매 아니면 계좌 이체밖에 안 된다. 현금을 두둑하게 가져가질 않아서 구경하는 데에 만족해야 했다.

귀여운 자석 장식부터 모빌, 엽서, 비누, 향초까지 다양한 물건들을 팔고 있다. 솜씨 좋은 사람들이 많이 모여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난 현금이 1만 5000원밖에 없었지. 후후후. 강제 절약. 그런데 왜 눈에서 물이…

벨롱장 겸 야시장은 저녁 6시부터 9시까지 이어졌다. 이 시간대가 택시도 참 안 잡히고 밥 먹기도 애매하다. 그래서 세화오일장 바로 옆의 은성 식당에 갔다. 소문난 국밥집이라고 적혀 있는데 일단 글씨체는 맛있어 보이는 가게 특유의 간판 폰트다.

뜨뜻하니 맛있었다. 포털에서 잔뜩 검색되는 곳은 아니지만 벨롱장 보러 갔다가 택시도 안 잡히고 밥은 먹어야겠고 애매하다면 들어가서 먹어도 괜찮을 것이다.    

렌터카 없이 떠난 여행이므로 다시 택시에 몸을 실었다. 이날의 숙소는 제주 송당리 보리 게스트하우스. 제주도 여행 좀 다녀 봤다 싶은데 이제 바다는 지겹고 오름 투어와 올레길로 눈길을 돌릴까 싶은데 너무 시끄러운 숙소를 싫고 호텔에서 자기는 부담스럽고 파티가 없는 조용한 게스트하우스를 원한다면 추천할만한 곳이다. 사장님이 일단 시끄러운 걸 싫어한다. 손님들도 각자 책을 읽거나 음악을 듣고 있는 게 인상적이었다. 게스트하우스에서 살고 있는 개들도 짖지 않아서 조용해서 좋았다.

오자마자 웰컴 음료 원샷. 보리 게스트하우스를 검색하면 맛있는 조식, 깨끗한 화장실, 무료 오름 투어가 연관검색어에 뜨더라. 그래서 우리도 오름 투어를 하기로 했다. 물론 화장실도 쓰기로… 아 이건 아니고. 물론 조식도 먹기로 했다. 여행의 꽃은 또 조식이죠.

보리 게스트하우스 6인실에 묵었다. 침대마다 온열매트가 설치되어 있어서 행복했다. 뜨뜻함 굿굿. 벽면에 설치된 조명을 켜고 커튼을 치면 아늑한 나만의 프라이빗 플레이스 완성. 화장실에는 샴푸, 린스, 바디샤워, 치약 등이 구비되어 있었다. 아, 온수 잘 나온다.

여행 가면 역시 2층 침대의 로망이! 공용 화장대 헤어드라이어 바람이 세서 좋다. 마실 물은 게스트하우스 전체 소등하기 전에 맞은편 보리 카페에서 받아오자.

짐 풀어놓고 분장(?) 지우고 다시 보리 카페에서 책 좀 읽다가 반쯤 드러누운 자세로 영화 좀 보면서 여독을 풀었다. 내일은 오름 투어 가야지. 룰루!

짹짹짹~ (아침이 오는 소리) 조용하면 다 착해. 비행기에서 아기 울음소리에 시달려서였는지 유독 조용해서 더 사랑스럽고 착해 보이던 멍뭉이 안녕~

짜릿해! 새로워! 조식이 최고야! 아침엔 늘 입맛이 없는데 어린이 입맛인 내 기준 되게 알차게 나와서 든든하니 좋았던 보리 게스트하우스 조식. 아 지금 보니 계란 프라이에 Bori라고 쓰여 있다.

밥 먹고 오름 투어 가기 전 일행들을 기다리며. 나중에 여기서 캠핑도 해보고 싶다.

게스트하우스지만 외할머니 계신 시골집 온 느낌.

청춘아 그대가 떠나는 여행은 낭비가 아니다. 오오 나의 비행기표 지름을 합리화해주는 문구다.

이 녀석 어느덧 개꿀잠을 자고 있구나. 개 부러운 녀석. 우리는 오름 투어를 간다.

사장님의 숨 막히는 뒤태. 이날 간 오름은 용눈이오름이었다. KBS2 ‘슈퍼맨이 돌아왔다’에서 송일국의 삼둥이 대한민국만세가 올라서 더 화제가 됐다고. 하지만 원래도 유명한 오름이다. 사장님이 가면서 설명을 해 주셔서 좋았다. 바닥에 즐비한 말똥을 피할 수 있게 그때그때 알려주셔서 다행히 운동화의 목숨은 안전했다.

여기서부턴 잠시 풍경 감상.

크으으으으~

코오오오오~~~

오르기 어려운 오름이 아니라 사진 찍고 구경하다 보니 금방 정상에 도착했다. 바람 시원해. 좋아. 신난다!

오름 정상을 맛봤으니 이제 제주 흑돼지도 맛볼 차례. 연관성 따윈 없지만. 광평 도새기촌 숯불갈비에서 고기를 석션하기로 했다. 참고로 여러 명이 각자 가고 싶은 곳을 정한 후 그를 토대로 짠 동선이라 솔직히 지금 이 동선 그대로 따라가는 건 비추천이다. 각각의 장소 리뷰를 본다는 느낌으로 따라오길 바라며.

파워 트와이스가 왔던 맛집 스멜. 체인점이었는데 고기 질도 나쁘지 않고 반찬도 깔끔해서 만족스러웠다.

더 만족스러운 비주얼. 열심히 굽고 먹느라 다음 컷은 없다.

그다음에 간 곳은 동굴의 다원 다희연. 여러 체험 코스가 있지만 동굴에서 차만 마시기로 했다. 차만 마실 거면 1인당 5000원이다. 추가 금액을 내면 다른 음료로 바꿀 수 있다. 아이들과 함께 와서 1인당 2만 8000원의 짚라인을 체험하는 가족 단위 손님도 꽤 보였다.

하지만 우리는 목적성을 띄고 동굴카페로.

어둑어둑 축축잼.

차는 맛있었다. 밖에서 다기와 차를 판다. 날이 좋으니 안에 오래 있을 필요 없겠지.

인근에 스위스마을이라는 이름부터 인공적인 마을이 있다고 해서 가봤다. 딱 봐도 사진 찍기에는 좋은 곳.

3단지까지 있었는데 1단지에만 상가들이 입점해 있었다. 전부 입점하면 좀 더 왁자지껄할 것 같다. 일단 사진은 잘 나온다. 건물 사이사이가 포토존이다. 벽 색이 고와서. 그런데 아직은 그게 전부. 사진도 이 느낌이 전부. 벽마다 붙어서 한 컷씩 찍고 나면 할 일이 없다. 갈 거라면 좀 더 정비된 후에 가는 걸 추천한다. 굳이 택시 타고 갈 것까진 없고 차가 있다면 들러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

일행 중 하나가 공항으로 가야 해서 보내고 그래도 마지막으로 바다를 봐야겠기에 찾은 조천읍 신북로 함덕 서우봉 해변. 원래 월정리 해변으로 가려다 시간이 안 맞을 것 같아서 중간에 들렀다. 파스텔빛 바다와 하늘이 예뻤다.

여행 말미 고독을 씹고 있는… 나처럼… 아련… 너는 나… 고독스타그램… 아니면 그냥 족욕 중인 거니… 나는 슬플 땐 족욕을 해…

우아아아앙 바다는 자꾸 봐도 좋다. 짧았던 일정이었지만 늘 여행은 옳다. 꽤 성공적인 지름이었다.


글&사진 조랭이 / 지름 지름 앓는 직장인(일명 지지직) 운영자이자 보기 좋은 회사가 다니기도 힘들다의 주인공. 자타공인 여행 덕후다. 직장 생활하다가 열이 잔뜩 받으면 홧김에 비행기표나 기차표를 지른다. 덕분에 월급은 언제나 사이버 머니. 지폐를 손에 쥐어본 게 언제였던가. 여행만 안 다녔어도 모아둔 돈이 지금보다는 더 많았겠지만 포기할 생각은 없다. 월급 탕진 넘버원 홧김에 한 여행 매거진에 그동안 다녀온 여행지 핫플레이스와 꿀팁을 소개하고 있다. kooocompany@gmail.com / kooocompan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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